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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적이 모르게 하라?

전쟁의 기술
로버트 그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공업’과목을 배우지 않아 자동차 보닛을 열고도 보이는 게 없음을 인정해야 할 때나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전쟁이나 전쟁사에 빗대어 쓴 경영전략서가 어렵게 읽힐 때마다 나는 기분이 많이 상한다. 그리고 궁시렁거린다. 왜 여자들의 작업인 ‘임신과 출산’에 비유한 마케팅 책은 없는지. 그렇게 씌여진 책이라면 어휘나 문맥이나에서 훨씬 쉽게 읽힐텐데 말이다.

이 책 <전쟁의 기술>은 제목부터 어렵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야 하는 전쟁의 개념조차가 벌써 생소하다. 모든 것을 관계안에서 해석하고 꾸려가는 여자들의 기본 마인드로 매사 전쟁 치르듯 하는 남자들의 마인드를 이해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암튼 나는 저자 로버트 그린을 믿고 읽기로 했다. 그의 전작 2권을 모두 해치운 전력이 있다. 그의 책은 이야기가 많아 일단 재미있다.

이 책은 지혜로운 전략가만이 억울한 패배를 당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손자에서 클라우제비츠까지 마오쩌둥에서 마거릿 대처까지 역사 속 위대한 승리자만이 알고 있던 공격술과 방어술, 용병술, 모략술 등을 철버히 분석한 전략비서(秘書)다. 더 쉽게 비유하자면 서양인이 쓴 손자병법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례들 가운데 정작 전쟁터의 영웅은 많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한 전략가들과 정치인, 문화인, 사업가들이 그들의 세대를 풍미한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얽히고 설키어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상대방을 압도하는 법, 라이벌의 심리를 파악하는 법, 승산없는 전투를 피해가는 법, 약자의 입상에서 협상하는 법 등 전통적인 전쟁의 기술에서 능수능란한 권모술수를 통한 모략의 기술까지 자신을 지켜내면서 원하는 것을 끌어내는 방법들을 배우게 된다.

무려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이를테면 전략적으로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이야기와 사례들은 모두 이 메시지를 부연설명하는 것들이다.

1.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2.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라
3. 당신 자신의 무기에 의존하라
4. 높이 올라 전장을 굽어보라
5. 정신적으로 당신 자신과 전쟁을 벌여라

내용이야 고사하고 책을 다 읽어냈다는 뿌듯함에 자신이 대견해 졌을 때, 우리의 머릿속 군수창고에는 전략이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실용지식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 옆, 빠듯한 공간엔 이제 다음 글도 자리잡게 하자. 1851년 쇼펜하우어가 쓴 글이다.

“인생은 하나의 기나긴 전투다. 안생의 매 단계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성공할 때는 칼날 바로 끝에서 성공하며, 우리가 죽을 때는 손에 든 그 무기로 죽는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적이 모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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